<노동개혁> 30년전 파견근로제 도입 日, 임금·복지향상으로 정책이동
30년전 파견제 일부업종 도입 후 지난해 파견 업종·기간 제한 풀어
인구감소로 노동력 부족이 문제…정규직 문제는 장기 과제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시간외근무 수당을 올려서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또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전문성이 높은 일은 시간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하는 새로운 노동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문제, 파견직 가능범위 확대 문제 등 우리나라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인상을 통한 복지향상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노동개혁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간 정면대치를 거듭하는데다 재계를 중심으로 조속한 법안 처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한국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기간제근로자법과 같은 논란이 이미 일본에서는 정리된 사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베 정권은 이에 따라 노동력 확보나 노동의 질 향상 등의 과제로 노동정책의 중심을 옮기고 있다.
◇ 고용유연성 높이는 파견법 30년전 제정돼
일본은 최장 3년으로 규정돼 있던 파견노동자의 파견 기간 제한을 없애는 내용의 노동자 파견법 개정안을 지난해 9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통역, 소프트웨어 개발 등 전문성이 높은 26개 업무를 제외하고 모두 최장 3년까지로 제한돼 있던 파견기간을 사실상 폐지하는 것이었다.
다만, 근로자를 파견받은 기업이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은 뒤 계속 근무를 시킬 수 있도록 하고, 한 파견 노동자가 한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으로 제한한다는 조건은 붙였다.
아울러 근로자를 파견하는 회사는 파견 기간이 3년이 된 근로자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하도록 파견처 회사에 의뢰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파견 근로자가 정규직이 되는 길을 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 노동조합과 야당은 "3년마다 사람만 바꾸면 같은 업무를 계속 파견근로자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파견 노동의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법안은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 속에 자민·공명당 등 연립여당 주도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후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이 문제는 별다른 쟁점이 되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개정 법에 따라 노동시장이 큰 문제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 '노동자파견법'을 대표로 하는 파견 근로 규제 완화는 30년 전부터 진행되는 등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6년 일본은 '설계업무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13개 업무'에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파견법을 마련했다.
파견제도를 도입하되 기업들이 정규직을 고용하는 대신 파견직을 주로 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대상 업무를 13개로 제한한 것이다.
10년 뒤인 1996년에는 근로자 파견사업 대상을 26개로 확대했고, 1999년에는 의료, 제조업 등 5개 부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종에 근로자 파견을 허용했다.
대신 일본 정부는 파견 고용의 상시화를 차단하기 위해 파견 기간을 1년으로 한정했다. 파견 기간 이상으로 고용할 경우엔 해당 업무 근로자를 정규직이나 기간제근로자로 전환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2004년 3월에는 파견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면서 제조업에 대해서도 파견사원 고용을 허용했다. 다만 제조업에 대해서는 2007년부터 파견기간을 3년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 아베 정권 '노동력 확보 고용창출 지원' 집중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파견노동자의 파견기간이 철폐되면서 아베 정권은 노동정책의 중심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확보와 고용창출 지원, 고급인력 유치 쪽으로 이동했다.
실제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노동자파견법을 핵심으로 노동 유연성이 많은 부분 확보된 만큼 그가 주창해 온 '1억 총활약 사회'를 위해 근로자와 기업 등 사회 전 부문이 총력을 다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1억 총활약 사회는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고, 한명 한명의 일본인이 모두 가정, 직장, 지역에서 더욱 활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아베 총리가 유연노동시간제 확충, 근무 성과 평가제, 장시간 근무 억제, 연차휴가 보장, 비정규직 정규화 및 처우 개선, 동일임금 동일노동 실현 등을 강조한 것도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미 상당 부분 정착돼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아베 정권의 노동정책은 실업자 감축과 고용확대, 여성인력 활용 확대, 글로벌 인재 활용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청년층과 여성층의 경제활동 장려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실업 기간이 6개월을 넘는 사람의 수를 20% 줄이고, 2020년 여성 취업률을 73%로 지난 2012년보다 5% 포인트 높이는 것이 목표다.
특히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해 보육 지원을 늘리고 사업주들에 대해 마타하라 방지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눈에 띈다. 마타하리는 모성과 학대(maternity, harassment)를 합성해 만든 말로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본인의 동의없이 인사 이동을 하거나, 임신·출산과 관련해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활용 확대를 위해 제조업, 건설업 이외에 고령자를 돌보는 개호(介護), 가사도우미 등의 분야로도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중구조 해결은 장기 과제
아베 정권으로서도 노동분야에서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파견근로 등 분야에서는 노동탄력성이 높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 문제 등의 과제는 수면하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오바니 가넬리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의 2018~2020년 경제성장률이 0.65%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분석하고 그 이유를 기업투자 부진과 노동시장 개혁 미흡으로 들었다.
그는 노동시장의 경우 무엇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불균형, 고용 안정성이 일본 경제의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개념인 한정 정규직 확대를 제안했다.
한정 정규직은 임금과 고용보장은 정규직과 같지만 근무 지역과 시간, 직무는 비정규직처럼 특정 장소나 지역 등으로 제한을 두는 고용 형태다.
아베 정권도 한때 '평생고용'까지 불리던 정규직 제도의 개혁 모델로 한정 정규직을 상정하고 있다. 다만 한정 정규직의 경우 해고 요건에 관한 이해당사자간의 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아베 정권은 이를 중장기 과제로 돌릴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노동력 부족이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인 만큼 정규직·비정규직 등 고용형태 개선보다는 노동력확보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것도 한 요인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로서도 올여름 참의원 선거 승리와 이를 동력으로 한 개헌 관철을 최대 목표로 하는 만큼 선거에서 마이너스가 될 정규직 해고를 위한 논의를 당분간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본 정치권 및 경제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choina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1/29 09:30 송고